|
“1980년대부터 전선업에 몸담고 있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나프타 등 전선 부자재 공급이 안 될까봐 걱정이다.”(전선 A사 대표)
“최근 한전과의 간담회 이후에도 한전에서 케이블 발주가 나왔다. 지금 상황이라면 5월 납기분 케이블 공급은 불가능하다. 수요처와 케이블 기업, 부자재 기업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전선 B사 임원)
이는 지난 15일 전선공업협동조합이 긴급히 마련한 ‘중동 사태로 인한 나프타 공급불안정 대책회의’에서 나온 참가자들의 하소연이다. 이처럼 국내 전선업계가 중동 분쟁사태로 인한 전선 부자재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산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이에 전선조합(이사장 류인규)은 긴급대책회의 직후 전선업계와 조합 명의로 공동 호소문을 발표하고, “전선은 ‘산업의 혈관’으로써 (부자재 수급 불안으로 인한) 생산 중단은 전력뿐만 아니라 건설, 제조 등 사회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와 수요처, 관련 업계의 협조를 요청했다.
또 ▲정부의 석유화학 제품 우선 공급 정책에 전선 산업을 핵심산업으로 포함 ▲나프타 및 원자재 공급 안정화를 위한 석유화학 및 컴파운드 업체의 적극적인 협력 ▲건설업계 및 한전 등 전선 수요처 입장에서 비상 상황에서의 공급 제약에 대한 불가피성 이해 등을 촉구했다.
전선조합은 호소문에서 “전선은 전력망과 산업설비, 사회 인프라를 지탱하는 필수재로, 공급 중단 시 산업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최근 중동 지역 분쟁 심화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나프타 기반 원자재 공급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전선 생산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선업계가 이처럼 호소문까지 발표하며 정부와 한전, 건설업계 등 주요 수요처에 이해를 당부한 것은 전선 및 케이블 피복재로서 나프타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나프타는 원유를 증류해 얻는 반제품으로, 석유화학 공정의 핵심 원료다. 이 나프타를 열분해하면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들이 생산되며, 이를 가공해 전기자재용 고분자 화합물(플라스틱, 고무, 합성수지)을 생산하는데, 전기자재 중 나프타 의존도가 가장 높은 분야가 바로 전선 업종이다. 구리나 알루미늄 전선 도체를 보호하고 절연하기 위해 합성수지를 사용하는 컴파운드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컴파운드의 경우에는 습기 문제 때문에 장기보관이 어려워 통상 업체별로 1~2개월의 재고를 유지하며 케이블을 생산, 공급해 왔다.
대책회의에 참석한 C사 관계자는 “업체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기껏해야 1~2개월 정도의 재고를 갖고 있는 상황이 아니냐. 최근 수급 불안 때문에 컴파운드 업체로부터 재고 상황을 들어보니 자기들도 여유가 없다더라”라며 “그 결과 컴파운드 가격은 계속 상승하고 있고, 이제 1~2주가 더 지나면 부자재 수급 불안정이 더 체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D사 관계자도 “어렵게 4월을 넘긴다고 해도 실질적인 전선 생산 차질은 5~6월부터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당장 전쟁이 끝나도 유조선으로 원유를 수송하고, 나프타를 생산하기까지 2~3개월 정도가 더 걸릴 텐데 그때까지 (업체들이) 버티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전선조합은 앞으로 전선 주요 부자재 수급 상황에 대한 업체별 데이터를 파악하는 한편 한전 등 주요 수요처에 긴급 대책회의를 제안해 사태의 심각성을 재차 설명하고, 케이블 발주 유예 또는 중단과 지체상금 문제에 대한 전향적 조치를 요청키로 했다.
류인규 전선조합 이사장은 “지난 4월 9일 회의 때에도 한전에 최근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며 “최근 업계에 닥친 문제는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모두 해당되는 심각한 이슈인 만큼 힘을 합쳐서 정부, 한전 등 주요 수요처에 대책 마련을 촉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